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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각장애는 중복장애가 아닙니다” 제3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건...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조회수:347
2020-12-24 13:14:25

“시청각장애는 중복장애가 아닙니다” 제3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건...

시청각장애인 지역사회 체험활동 따라가다... “꽃 냄새 좋아, 간만의 외출 신나요!”
통역사도 활동지원사도 ‘접촉 기피’ 분위기 심각... 상상 속 코로나에 ‘공포감’ 극심
코로나 시대에 통역사 구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 수어 가능한 활동지원사 양성 절실
[인터뷰] ‘손잡다’ 조원석 대표, “한국의 헬렌 켈러 아니고, 시청각장애인입니다”

 
 
오늘의 집결지는 신논현역이다. 저 멀리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손에 손을 잡고 있는 무리가 보인다. 코로나 시국에 보기 드문 풍경이라 궁금증을 자아내던 찰나 이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바로 시청각장애인 단체 ‘손잡다’의 회원들이다. 시청각장애인에게 ‘손’은 눈과 귀와 입이 되어주는 소통창구다. 말소리도, 웃음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조용한 현장이지만 부산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간 만나지 못했던 아쉬움과 반가움을 손의 온기로 부지런히 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늘 꽃꽂이 체험을 앞두고 있다. 굽이진 골목을 돌아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 들어서자, 오늘 손질할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카네이션과 장미부터 유칼립투스, 리시안셔스, 스토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이젠 손끝과 코의 감각을 활용할 차례다. 통역사가 촉수어(시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수어 중 하나로, 수어를 손으로 만져서 하는 의사소통)로 꽃 이름을 알려주고 생소한 것은 손바닥에 적어 설명해주자 모두 차분하게 꽃을 음미해갔다.

 날아다니는 소리를 손으로 전달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활동지원사가 농인인 경우 과정은 더 심화된다. 수어통역사가 강사의 말을 듣고 앞에 앉은 농인 활동지원사에게 수어로 통역을 하면, 농인 활동지원사가 전달받은 정보를 시청각장애인 회원에게 촉수어로 설명하는 방식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도 3명이 합을 맞춰야 완벽하게 전달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무엇보다 15cm도 되지 않는 거리에 얼굴을 대고 긴밀하게 소통을 하는 방식은 서로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손잡다’의 조원석 대표는 예상보다 젊은 나이의 청년이었다.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그는 회원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고 일일이 안부를 물었다. 그와의 인터뷰는 색다른 방식으로 진행됐다. 점자정보단말기에 노트북을 연동해서 기자가 질문을 타이핑하면 조 대표가 점자로 읽고 답하는 방식이었다.

‘손잡다’는 2017년 처음 출범했다. 당시만 해도 시청각장애인 당사자는 조원석 대표 한 명뿐이었다. 통역사 및 자원봉사자로 구성된 설리반 회원까지 포함해 9명으로 시작한 자조 모임이 지금은 120명의 회원을 보유한 단체로 성장했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전국시청각장애인대회 등 대규모 행사가 취소되면서 시청각장애인 당사자 간의 교류와 소통을 위한 자조모임과 지역사회 탐방활동으로 대체됐다.

‘손잡다’에서 진행하는 시청각장애인 네트워크 사업은 한국장애인재단의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프로그램 지원사업’은 장애인단체의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다양한 창의적인 장애인 프로그램을 발굴하고 있다.


Q. 코로나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네요. 오랜만에 모이셨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한국장애인재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지원한 것도 전국시청각장애인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함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못 했어요. 통역사를 구하는 것이 원래 가장 힘든 일인데, 코로나 때문에 통역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어요. 큰 규모의 행사는 보통 통역사가 1:1 혹은 1:2로 붙으니까 당사자가 30명이면 통역사가 70명에서 80명정도 필요하거든요. 뜬소문인지 모르겠지만 통역사 중 한 명이 확진됐다는 이야기가 돌면서 당사자와 활동지원사들도 접촉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심해졌어요.

5월 말에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졌을 때는 보라매공원에 둘러앉아서 밥 먹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고, 8월에는 목동에 있는 피자학교에 가서 피자만들기 체험을 했어요. 저희가 마냥 노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웃음) 시청각장애인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알기가 어려워요. 게다가 이런 자조모임이나 체험활동을 통해 연대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거든요. 오늘 꽃꽂이 수업도 회원분이 원해서 진행하게 됐어요. 당사자가 직접 나가서 체험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어요



 
Q. 코로나 상황에서 시청각장애인분들의 불안감이 극심했을 것 같아요.

우선 정보를 얻지 못하니까요. 너무 불안했죠. 그나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자조모임도 중단됐으니까요. 촉수어를 사용하든 근거리에서 음성으로 말하든 모두 근접해서 소통을 해야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접촉을 피하게 되니 통역사와 활동지원사 모두 만나기 어려웠고요. 특히 사태 초반에는 정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무섭다는 이야기만 듣고 상상을 하다보니까 모두 공포감에 시달렸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어요. 엘리베이터에는 항균 필름이 붙어있어서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 분도 계셨고, 마스크 구매도 막막했는데 지금은 마스크 대란이 끝나서 그나마 나아졌네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고립 상태에 빠지는 것인데, 앞으로가 더 걱정이에요.

 
Q. 시청각장애는 관심도 지원도 가장 적은 유형이라고 들었어요.

최근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 저희 단체가 협력해서 조사를 했는데 순수 시청각장애인으로 서울 지역만 1,330명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치가 나왔어요. 여기에 지체장애나 학습장애 등도 함께 있는 경우 4천명인데, 전국적으로는 훨씬 더 많겠죠.

대부분 시청각장애를 중복장애랑 혼용해서 사용하는데, 엄연히 다른 개념이에요. 색깔에 비유하자면 빨간색과 파란색을 혼합했을 때 보라색이 되잖아요. 그렇다고 보라색을 ‘빨간색과 파란색의 혼합색’ 이렇게 부르지는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시청각장애인은 ‘보라색’인거죠. 두 가지가 혼합되어 나타난 제3의 색깔이자 제3의 장애이기 때문에 중복장애라고 불리우는 걸 선호하지 않습니다.


 
Q. 생각보다 대표님이 젊으셔서 놀랐어요. 대표님의 이야기도 궁금한데...

저는 어릴 적에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 고열과 뇌수막염이 겹치면서 시력, 청력을 잃고 지체장애도 얻었어요. 당시에는 팔다리를 못 움직였는데, 부모님이 “어떻게든 일어나야 한다”라면서 억지로 자전거도 태우게 하고 걷게 하셔서 다행히 팔다리에는 힘이 돌아왔죠. 병원에서는 약을 너무 많이 써서 더 이상 약물 치료는 위험하다고 해서 그때부터 장애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됐어요.

저는 제가 시청각장애인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런 용어조차 몰랐고 헬렌 켈러와 같은 장애 유형인지도 몰랐고요. 일본의 헬렌 켈러라고 불리는 후쿠시마 사토시라는 도쿄대학교 교수가 있어요. 2007년 중학교 1학년 때 그 분이 방한을 했는데 제가 아동·청소년 대표로 그 행사에 참석하게 됐어요. 저도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저에게 “세상에는 너와 같은 사람이 많아. 그런 사람 중에 교수가 된 사람이 있는데 한 번 만나볼래?”라고 해서 가게 됐죠. 제가 헬렌 켈러랑 같은 장애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됐어요. 교수님을 뵙고 나서 “나와 같은 장애인도 할 수 있구나”라는 꿈이 생겼고, 정확히 10년 후인 2017년에 ‘손잡다’를 창립하게 됐습니다.


Q.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항상 헬렌 켈러 이야기가 빠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시청각장애인이지만 헬렌 켈러를 그렇게 존경하는 편은 아니에요. 헬렌 켈러도 설리반도 대단한 것은 맞지만 당시 교육방법과 현재 복지 패러다임은 결이 다르잖아요. 지금은 당사자들의 자립 모델이 부각되는 시대니까요. 그래서 누군가 저를 소개할 때도 ‘한국의 헬렌 켈러’ 이런 표현보다는 ‘한국의 시청각장애인’이라는 표현을 더 선호해요. 헬렌 켈러와 저와의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면, 둘 다 고열로 인해 시청각장애인이 됐다는 것 하나 뿐이에요.(웃음)
Q. 복지 패러다임을 말씀하셨는데, 국내에서도 헬렌켈러법(시청각장애인 지원법) 제정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요.

사실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고 하는데, 막상 현실에서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아요. 예를 들어 ‘장애인 특수교육법’을 개정해서 시청각장애인은 무조건 특수교육 교사가 가르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한다고 해도, 시청각장애아동을 교육하는 특수교사 자체가 거의 없잖아요. 복지기관도 마찬가지고요. 진짜 당사자들이 바라는 것은 당사자 중심의 지원정책이에요. 차라리 당사자들이 모인 자조 단체의 재원 마련에 도움을 주던지, 해외의 좋은 정책 사례를 보고 배울 수 있도록 유학사업, 파견사업을 지원하는 방향 등 실질적인 지원책이 필요해요.

또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맞춤형 활동지원사’ 양성이에요. 활동지원사들이 수어를 못 하니까 곤란할 때가 많아요. 화장실을 간다거나 간단한 행동은 손바닥에라도 적어서 말할 수 있지만, 오늘처럼 꽃꽂이 수업 강사가 말하는 걸 전달하는 것은 통역사가 해야하잖아요. 저희가 시청각통역사(지원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시청각 통역이라는 것은 단순히 말을 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아요. 누군가 나에게 말을 할 때 저 사람이 나를 째려보면서 말하는지, 내가 말하는 데 딴짓하고 있는 건 아닌지, 큰 소리로 말하는지, 소곤소곤 말하는지 등 들리고 보이는 모든 상황을 통역할 수 있어야하죠. 통역활동지원사라고 통칭해서 부르기도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제도가 절실해요.


Q. 내년에 시청각장애인협회로 단체명을 바꾸신다고 들었어요!

맞습니다. 시작할 당시에는 당사자가 저 한 명뿐이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저희 단체는 교육 사업에 주력하고 있어요. 당사자에게 점자정보단말기와 수어, 문해능력, 국어를 가르치고 있고요. 시청각장애인 대회는 매년 추진하려고 계획 중인데,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내후년을 바라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아시아 시청각장애인 컨퍼런스’에 참여하는 것과 4년마다 열리는 국제행사에 나가는 것도 목표에요. 국내 시청각장애인 단체가 국제 무대로 계속 진출할 수 있어야 해요.

무엇보다 장애인 자립의 최종 목적인 일자리 연계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국제 대회만 가도 항상 해외 국가들은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오고 플리마켓도 하는 데 매번 한국만 빈손이더라고요. 그래서 돈을 버는 목적에는 못 미쳐도 최소한 해외 시청각장애인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고자 다양한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있습니다. 경제활동까지 이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당연히 적극 추진할 계획입니다. 내년에 협회 규모가 커지면 그때 다시 취재 와주실거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