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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템플 그랜딘’으로 배운 자폐장애인 세상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조회수:961
2020-02-12 10:24:22

영화 ‘템플 그랜딘’으로 배운 자폐장애인 세상


단지 사물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표현할 뿐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2-11 14:44:35


뚫린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모습. ⓒ픽사베이  

  뚫린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모습. ⓒ픽사베이

 눈짓은 말과 몸짓처럼 사람에 생각을 나타낸다.

흔히 가까운 사이를 표현할 때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고 말한다. 또 눈은 마음의 창이란 말로 눈이 사람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살기, 독기를 품은 것을 나타내는 것도 눈이고, 선정적인 호기심을 드러내는 뻔뻔스러움도 눈으로 나타내는 마음이다. 상대를 아래로 내리깔고 쳐다보며 경멸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 눈빛을 판단하는 눈은 정확한 걸까? 보고 싶은 대로만 보기도 하고 신뢰를 가장한 눈빛으로 상대를 깜빡 속이기도 한다.

눈은 수 백마디의 말보다 많은걸 나타내기도 한다지만, 마주보는 눈빛에서도 가식과 거짓, 위선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마주 보지 못하는 사람에 진심도 읽어야 읽어야 하지 않을까?

 영화 템플 그랜딘 스틸컷. ⓒ다음영화  

  영화 템플 그랜딘 스틸컷. ⓒ다음영화

​영화 ‘템플 그랜딘’의 주인공 템플은 아기 때부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애타는 눈길에도 무심했다.

또래보다 늦은 네 살에 말을 하게 되었지만 일상적인 말도 통하지 않았다. 혼자만 생각하는 세계에서 자신만의 말을 한다.

의사는 자폐증이라 진단하며 특수학교나 시설을 권했지만 엄마는 거부했다. 템플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다를 뿐이란 걸 믿었다.

끈임없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 같은 아이를 키우는 일과, 장애아는 부모가 무엇인가 잘못 길렀기 때문이란 사회적 편견으로 이중의 고통을 겪었지만 엄마는 딸에 대한 사랑으로 버텼다.

아이 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세심한 정성으로 아이의 재능을 살폈다.

사물을 직접 만져보고 만들어 보게 하는 실험위주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고등학교에서 만난 칼락 선생님은 템플이 부족한 아이가 아니라 남과 다를 뿐이라는 걸 인정했다. 다를 뿐 아니라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템플이 다른 세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길을 안내해 준 스승이다.

템플이 세계를 그림으로 생각하고 기억한다는 걸 알았다.

원근법에 의한 눈의 착각을 증명하는 장치를 만들수 있는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템플은 집요하게 몰두하여 다른 학생들은 엄두도 못 낸 과제를 멋지게 해결한다.

여름방학을 이모네 목장에서 지내며 처음으로 동물들과 정서적인 교류를 경험했다.

사람들과의 신체접촉은 못하던 템플이 목장의 소들은 만질 수 있었다. 어루만지며 그들의 감정 상태를 느꼈다.

템플이 동물학자가 되는 첫 걸음이다. 이어 대학생으로 기숙사 생활을 한다. 열고 들어가야 할 하나의 문이다.

상대와 인사할 때 이리저리 흔들리는 시선, 강의시간에 어긋나는 주제를 말하거나 작은 일에 나타나는 격한 반응 등으로 여전히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 별난 애, 모자라는 학생으로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우연히 알게 된 시각 장애인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 템플의 말에 귀기울이고 마음을 이해해 주었다. 자신의 모습을 볼수 없는 친구 앞에서 템플은 편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냥 쳐다 보는 시선이지만 템플에겐 따져 묻는듯 공격적으로 느껴졌었나보다.

상대방의 호의를 표현하는 악수나 포옹 등 다른 사람과 신체접촉을 못하던 템플이 친구의 길 안내를 위해선 팔짱도 낄 수 있게 되었다.

또 하나의 문을 넘었다.

하나씩 마음에 문을 넘을 때마다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로 막았지만, 템플은 지치지 않고 나아갔다.

때로는 다른 사람들 흉내도 내보았고, 혹은 거친 고집으로 자신에 주장을 펼쳤다.

이후 대학원까지 공부를 계속한 템플은 목장의 소들을 안정시키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도살장으로 가는 소들을 최후까지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설계였다. 인간을 위해 희생되는 소를 죽는 순간까지 폭력적으로 공포스럽게 대하지 말자는 인도주의적 차원의 시스템이다.

지금도 북미의 목장에서는 이 시스템을 사용 중이라고 한다.

영화는 평생 자폐장애인으로 살면서 주립대학의 교수로, 동물학자로 자폐아 인식개선을 위한 강연을 하며 산 템플 그랜딘의 삶을 그렸다.

영화 템플그랜딘 스틸컷. ⓒ다음영화  

  영화 템플그랜딘 스틸컷. ⓒ다음영화

 자폐장애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독특한 천재로 그려진다. 그들이 일상에서 느낄 고통보다 특정한 부분의 재능과 독특한 행동을 희화해서 강조한다.

템플은 많은 사람들이 웃는 농담을 이해하진 못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무엇으로 기쁜지 어떨 때 기분이 나쁜지 잘 알았고 마음을 그대로 표현했다.

사회 구성원으로 살며 사람들이 만들어낸 규율들.
“이럴 땐 이래야 돼, 저럴 땐 저래야 해”하는 관습이나 문화를 걷어 내고 나면 자폐장애인도좀 다른 사람일 뿐이는게 더 잘 보일 것 같다.

사람이 안아줘서 안정을 느끼는 것처럼, 빙글빙글 몸을 돌려 공간에 안겨 편안함을 느끼는 아이.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몸을 꽉 조이는 곳에 갇혀서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거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느라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못할 때가 있다.

시선을 느끼는 것을 넘어, 관심을 받고 싶어 애를 태우고 보여지는 삶을 꾸미느라 시간을 쏟기도 한다.

영화 ‘템플 그랜딘’을 통해 본 자폐장애인은 상대와 눈 맞추며 이야기하진 않아도 속이거나 감추지 않았다.

진실했다. 단지 사물을 조금 다르게 이해하고 표현할 뿐이다.

남들과 다른 눈으로 보여지는 세계를 세상의 사람들이 알아듣게 혼신으로 설명하며 살아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세계를 잘 표현한 영화가 있었다.

영화를 보며 부족하게나마 또 하나의 세상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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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선희 (gangho93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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