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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조회수:1000
2020-01-22 10:51:57

어린 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뇌병변장애 유민기 씨의 삶 - 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0-01-21 14:58:04


유민기 : “6학년 때 우연히 자동차에 대해 알게 되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BMW, 람보르기니 등 외제차도 좋아해서 그때의 장래희망은 자동차정비기술자였습니다.”

현대나 기아 대우차 뿐 아니라 폭스바겐이나 도요타에도 심취했다. 자동차의 외형 뿐 아니라 엔진이나 구조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카센터를 하려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생일잔치. ⓒ이복남    

 어린 시절 생일잔치. ⓒ이복남

‘소년이여 꿈을 가져라’ 어디선가 읽은 책에서도 꿈을 가지라고 했는데 그가 꿈꾸는 장래희망 자동차 정비기술자는 그에게는 어림도 없는 그야말로 꿈에 불과했다.

유민기 : “자동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수록 정비기술자는 제가 할 직업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씁쓸했지만 정비기술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이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나?” 잠깐 자신의 장애를 원망해 보기도 했지만, 아직 어려서인지 금방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유민기 : “중학생이 되니 이동수업을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자기 반이 있어서 아침에 그 반에 가면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수업을 했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자 각 과목 담당 선생님이 있는 반을 학생들이 찾아 가야 했다.

유민기 : “6학년 때부터 보조선생님이 있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밥을 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식판으로 밥을 받았고, 자기 식탁은 자기가 치워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식당으로 가서 식판에 밥과 반찬을 받았다. 밥을 먹고 나면 식탁을 치우고 이를 닦았다. 그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이를 닦았다.

유민기 : “5년 때 건치상을 받았습니다.”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치아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치과에서도 치료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유민기 씨는 희고 고른 이를 필자에게 내 보였는데 이를 열심히 닦아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충치하나 없다고 했다.

유민기 : “중학생 때부터는 스쿨버스(학교통학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평소에는 수동휠체어를 사용했지만 스쿨버스를 탈 때는 보조선생의 도움으로 손잡이를 잡고 버스를 타고 내릴 수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 성지곡에서. ⓒ이복남  

 중학생 때 성지곡에서. ⓒ이복남  

  

 초등학교 다닐 때는 어머니가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가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그러나 유민기 씨가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어머니에게도 어느 정도의 시간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유민기 : “보치아를 하다 보니 보치아가 재미있었습니다. 정비기술자는 못 될 것 같고, 보치아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의 장래희망은 보치아 선수로서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유민기 : “아버지께서 보치아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어요.”

아버지께서 왜 반대를 하셨을까.

유민기 : “보치아는 놀이 삼아 하는 것이지 장래희망이 될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순순히 보치아를 그만 두었을까.

유민기 : “저는 보치아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지만, 보치아 선생님이 다른 학교로 가시는 바람에 보치아는 저절로 시들해졌습니다.”

정비기술자도 못 되고, 보치아 국가대표도 못 되고, 이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나?

유민기 : “부모님은 저에게 맞고 밥벌이가 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고 하셨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컴퓨터를 처음 보았다. 집에도 컴퓨터가 있었고 학교에도 컴퓨터가 있었지만 컴퓨터를 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유민기 : “초등부 5학년 때 체신청에서 하는 컴퓨터 교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컴퓨터 선생님이 집으로 직접 와서 컴퓨터를 가르쳐 주었다. 컴퓨터를 배우면서도 그때까지만 해도 컴퓨터를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유민기 :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싶은 독립생활이 꿈이었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첫째도 독립이요, 둘째도 독립이요, 셋째도 독립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독립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의 독립투사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인데 김구 선생이 꿈꾸는 소원은 대한독립이었다. 


제주도 비전트립. ⓒ이복남  

  제주도 비전트립. ⓒ이복남

 그런데 유민기 씨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꿈꾸기 시작했던 것은 대한독립 같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소원이라고 말 할 수도 없는 혼자 살고 싶다는 너무나 단순하고 보잘 것 없는 독립생활이었다.

비장애인들은 성인이 되면 원하기만 하면 독립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에게 독립생활이란 필생의 소원이자 또 하나의 모험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립생활센터에서는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교사의 도움을 받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체험홈을 운영하고 있다.

유민기 : “부모님은 절대로 안 된다고 하셨고, 특히 엄마에게 있어 저의 독립은 어림도 없었습니다.”

고3 겨울방학 때 처음으로 전동휠체어를 타 봤다. 학교에 전동휠체어 몇 대가 나와서 빌려 주었다.

유민기 : “ 버튼만 누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해 보니 전동휠체어만 사용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독립생활에 대한 꿈은 더 깊어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여전히 그의 독립생활을 반대했다.

유민기 : “그동안 수동휠체어를 사용하다가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니까 엄마는 그것도 반대했습니다. 혼자서 쌩쌩 달리는 전동휠체어를 보고는 ‘너 이러다 죽는다’고 더 염려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전동휠체어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더구나 어머니의 반대가 심해서 전동휠체어를 구입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알아보니 부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3개월 간 대여를 해 주고 있어 그도 대여를 받았다.

유민기 : “저도 고집이 있어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했더니 부모님도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는 부산혜송학교 고등부 3년을 졸업하고 부산한솔학교 전공과에 들어갔다. 일반대학은 왜 안 갔을까.

유민기 : “특수학교를 나와서 일반대학을 가기는 어렵습니다. 일반대학을 가려면 대입 수능공부를 해야 할 텐데, 특수학교에서 수능공부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15조 의하면,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 지체장애, 정서ㆍ행동장애, 자폐성장애(이와 관련된 장애를 포함한다), 의사소통장애, 학습장애, 건강장애, 발달지체,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 등 특수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진단ㆍ평가된 사람을 특수교육대상자로 선정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제24조에는 ‘특수교육기관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한 특수교육대상자에게 진로 및 직업교육을 제공하기 위하여 수업연한 1년 이상의 전공과를 설치‧운영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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