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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보행한다는 것은
대전시지체장애인협회 조회수:933
2019-10-30 09:58:24

시각장애인이 보행한다는 것은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9-10-29 13:28:58


1992년, 처음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망막이탈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망막박리'라고 하는 그 병이다. 응급으로 수술을 받긴 했지만 수술 실패로 결국 실명을 하게 되었다.

그 후 한 쪽 눈으로만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내다 병역 신체검사를 앞둔 99년이 되어서야 시각장애 5급 판정을 받고 장애인 등록을 했다.

나는 정보통신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시력이 좋지 않았음에도 대학과 대학원에서 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했고, 졸업한 뒤에는 IT 관련 기업에서 개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2013년 겨울, 갑자기 오른쪽 눈의 시야가 흐려져 병원에 갔더니 왼쪽 눈과 같이 망막박리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다시 응급 수술을 받아 망막이 떨어지는 것은 막았지만, 흐려진 시야는 다시 밝아지지 않았고, 결국 다음 해 4월 전맹이 되어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1년 동안은 '이제 어떻게 뭐하고 사나?' 하는 한탄으로 두문불출하며 지냈다. 그러나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시각장애인복지관에 연락했고, 그렇게 '기초재활훈련'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점자교육과 정보화교육, 보행교육 등을 받기 시작했다.

전맹이 되고 나니, 이전에는 관심도 없었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이 큰 어려움으로 다가왔다. 보행을 할 때는 중간중간 끊어진 유도블록이 아쉬웠고 유도블록 위에 세워진 입간판, 어묵이나 붕어빵을 파는 노점, 불법주차된 차량과 오토바이 등이 장애물로 다가왔다.

또 길을 가는 데 감사하게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분들이 있지만, 무작정 손목이나 흰지팡이를 잡고 끄는 사람, 뒤에서 조정하려 하는 사람, 앞서가며 잘 따라 오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방해가 될 때도 있었다.

신호등이나 지하철역 내, 관공서 등 음향신호유도기가 반응하지 않는 곳도 아직 많으며, 설치가 되어 있는 곳도 주민들의 시끄럽다는 민원에 제대로 동작하지 않게 해놓은 곳도 있다. 보도에 차량이 올라 오지 못하도록 설치된 볼라드 마저 규정에 맞지 않은 곳이 많아 보행을 하면서 부딪혀 부상을 입은 경우도 많이 있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은 지하철이나 시각장애인 콜택시, 그리고 시각장애인에게 요금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바우처 택시이다. 지하철은 그나마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적은 편이지만 버스 이용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

우선 버스정류장의 위치 파악부터가 어렵다. 그렇게 어렵게 정류장을 찾는다고 해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도착하는 버스가 무슨 버스인지 알기 쉽지 않고, 버스가 정차하는 위치도 제각각이어서 승차시 위험한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정차한 버스의 번호를 묻기 위해 기사에게 '00번 버스가 맞나요?' 라고 물으면 그냥 고개만 끄덕이는 일도 있었고, 카드 태그하는 곳의 위치 파악이 되지 않아 더듬거리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손잡이를 잡지도 않았는데 출발해 버려서 넘어질 뻔한 일도 있었다.

할 수 없이 특별 교통수단인 시각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택시가 잡히는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 만큼이나 어려워 '로또콜'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이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의 독립보행은 많은 위험 부담과 어려움을 안고 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중에서 많은 분들이 활동지원사의 안내보행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배정된 활동지원 시간이 많지 않아 겨우 출퇴근에만 이용하고 있고 정작 필요할 때에는 이용하지 못할 때가 많은 상황이다.

그런데 장애등급제가 폐지되어 다시 조사를 받으면 그렇지 않아도 적은 활동지원 시간이 더 줄어들고, 또 시각장애인의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조사표로 인해 향후 특별교통수단이나 정보통신보조기기 지원 등 각종 복지 정책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고 하니 참 걱정스럽다.

가고 싶은 곳에 누구나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무장애 환경을 꿈꾼다.

*이 글은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의 당사자 목소리 공유 프로젝트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들' 일환으로, 우리동작장애인자립센터에서 근무하는 최상민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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